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동백이가 설사를 했습니다. 처음 설사했을 때에는 '이 녀석, 또 배탈이 났구나.' 싶었습니다. 와구와구, 동백이는 식욕이 왕성합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걸 아무거나 주워먹으려고 하는 동백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날이 어둡거나 우거진 수풀 옆을 지날 때면 재빠른 동백이의 일탈을 저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나쁜 식습관 때문에 동백이는 평소에도 가끔 묽은 변을 보거나 아주 드물게 설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설사는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1. 굉장히 묽은, 거의 액체에 가까운 변.
2. 색깔이 갈색~붉은색.
3. (변의 양을 떠나) 매우 잦은 횟수. 30분 산책하는 동안 7번 이상의 설사.
예사롭지 않은 설사 사건의 다음 날. 전날의 여파로 인해 동백이의 아침밥을 평소 먹는 양의 1/3만 주고, 그 위에 유산균까지 듬뿍 얹어주었습니다. 배탈이고 나발이고 역시나 와구와구 잘 먹는 동백이. 어제 배탈 난 녀석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예전에 설사 때문에 동물병원에 내원했을 때 강아지가 설사할 땐 물도 많이 먹이지 말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급수도 조금만 했습니다.
그리고 잠깐 외출을 하고 온 사이에 제 방 구석에다가 똥을 쌌는데(웬일로 배변판이 아니지?), 조금 무르긴 하지만 형태가 있는 변이었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래, 똥 잘 쌌으니 괜찮아." 애써 웃으며 치웠답니다(ㅡㅡ). 그래서 저녁은 평소처럼 먹이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이제 진짜 예쁘고 건강한 똥을 싸겠거니 하며 걷는데,
세상에. 전날의 설사는 양반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무려 피가 섞여 있었다.
이때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피라니. 혈변이라니! 당장 산책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서서 인터넷에 강아지 혈변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찾아보니 혈변의 원인이 정말 다양했습니다.
혈변의 원인
1. 감염
- 각종 바이러스(파보 바이러스 등)
- 기생충
2. 식단 문제
- 음식 알레르기
- 갑작스러운 식단 변화
- 건사료에서 생식 식단으로 변경 후 살모넬라균 감염
- 초콜릿, 포도, 양파, 마카다미아 등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섭취
- 독성물질 또는 이물질 섭취
3. 각종 장 질환
- 소화 장애
- 소화기관 내 혹, 용종
- 변비
- 결장염
- 출혈성 위장염(HGE)
- 염증성 장 질환(IBD)
- 위궤양(소염진통제 부작용인 경우도 있음)
4. 기타 질환
- 출혈 장애
- 항문 질환
- 암
정말 큰일이 난 거면 어떡하지? 주말 밤이라 병원에 갈 수도 없어서 전전긍긍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막바지에는 정말 피만 뚝뚝 흘려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여전히 밥은 잘 먹지만(정말 대단한 식욕) 왠지 축축 늘어지는 듯한 동백이를 보며 근심만 쌓여갔습니다. 괜히 배도 문질문질 해 주었고요. 그러다 습관처럼 동백이 이빨 상태를 확인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잇몸이 하얗습니다. 선홍색 고운 잇몸이어야 하는데, 어쩐지 창백해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게 느껴질 땐 바로 검색!
강아지 잇몸 색이 창백한 흰색인 원인
- 빈혈
- 혈액응고 장애
- 심장 질환
- 신장 질환
- 저체온증
- 내출혈
- 심각한 기생충 감염 등
비슷한 증상으로 귓바퀴가 하얘지는 것도 있다길래 동백이의 귀를 확인했더니 잇몸처럼 핏기 없이 너무나도 창백했습니다. 더는 병원 방문을 미룰 수 없어서 제주시내에 일요일에도 진료가 가능한 동물병원을 검색했습니다.
병원에 전화해 보니 주말은 17:30까지 내원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셔서 한 걸음에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남원장님 한 분이 고양이 진료를 보고 계셨습니다. 고양이의 진료가 끝나길 애타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동백이 진료 차례가 되었고, 저는 속사포 랩 하듯 동백이가 여태 보인 증상을 말씀드렸습니다.
1. 이틀 전 설사
2. 어제 혈변
3. 오늘 창백한 잇몸과 귀
의사선생님께서 여기저기 동백이 상태를 살피시고는 몇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혈변 때문에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아래 질문에 해당하는지 체크해 보세요.)
Q. "설사/혈변 후 밥을 잘 안 먹나요?"
A. 너무 잘 먹습니다.
Q."평소와 (컨디션이) 다른가요? 에너지가 없다거나..."
A. 약간 다운된 느낌은 있지만, 평소와 비슷합니다.
Q. "혈뇨(피가 섞인 오줌) 증상이 있었나요?"
A. 오줌 색깔은 평소랑 같아요. 노란색.
Q. "길바닥에 떨어진 이물질을 자주 먹는 편인가요?"
A. 자꾸 먹으려고 합니다..
의사선생님께서 혈변의 몇 가지 원인을 말씀해 주시고는 진료와 상담을 통해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1. 빈혈이나 바이러스 감염처럼 심각한 질환은 아니다.
위 질환이라면 밥도 먹지 않으려고 하고, 혈변뿐만 아니라 혈뇨 증상도 나타나야 한다고 합니다. 평소처럼 밥을 잘 먹던 동백이가 어찌나 다행이었는지요.
2. 이물질 섭취로 인한 대장 내 출혈이 가장 유력한 원인이다.
동백이가 무심코 먹은 이물질이 위와 장을 거쳐 대장에서 주변에 상처를 내어 출혈이 일어나고, 그게 변과 함께 나온다는 것이 의사선생님의 소견이었습니다. 아휴. 닭뼈 같은 뾰족한 이물질을 냅다 먹어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동백이만 알겠지만요.
혈변에 대한 처방은 두 가지였습니다. 주사 한 방, 그리고 약 5일분(하루 2번 복용). 만약 약을 다 먹을 때까지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더 큰 질환을 의심해야 하니 그땐 추가 검사를 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설마 증상이 낫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지만 동백이는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며 병원을 나섰습니다.
혈변 사건 이후
5일치 약을 다 먹기도 전에 동백이의 혈변과 설사 증상 모두 호전되었습니다(하지만 증상이 재발할지 모르니 처방받은 약은 끝까지 다 먹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동백이와 산책할 때 이물질을 삼키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뒤로 다행히 혈변 증상을 또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설사는 가끔씩 했지만요. 동백이가 앞으로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야겠습니다. 이상, 강아지 혈변과 설사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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